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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마클 폭로로 '영국사회 인종차별' 시험대 올랐다

By Yonhap

Published : March 9, 2021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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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과 결별 후 미 CBS와 인터뷰하는 해리 왕자 부부(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왕실과 결별 후 미 CBS와 인터뷰하는 해리 왕자 부부(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의 해리 왕자와 그 배우자인 메건 마클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그동안 영국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유색인종 차별의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여론조사기업 클리어뷰리서치의 케니 이마피든 국장은 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에서는 (인종문제에 관한) 역사가 있고, 사회적 논의의 전통이 영국보다 길다"면서 영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겉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논의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작년 영국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9%가 영국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조사됐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는 영국 흑인들의 75%가 백인과 비교해 자신들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영국 전체 인구의 3%가 흑인이지만 이들이 기업 간부나 고위 공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 절반인 1.5% 수준이다. 의회 구성원 650명 중 흑인을 포함한 소수인종은 10%인 65명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많은 흑인 영국인들에게 해리와 마클의 이번 인터뷰가 왕실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제공했고, 영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아슬아슬한 인종차별의 긴장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국 왕실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이번에 제기된 인종차별 문제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버밍엄 시립대의 방문학자 마커스 라이더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현대에 최초로 흑인 여성이 영국의 왕실에 들어간 것이고 최상층부에서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해리-마클 부부의 아들 아치의 왕증손 지위 논의에 피부색 문제가 결부됐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인 나딘 배츨러-헌트도 메건의 대응은 영국 흑인이 겪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메건과 마찬가지로 흑백혼혈인 그는 NYT에 "많은 우리 조상이 왕의 이름으로 영국이라는 제국의 깃발 아래 노예가 됐는데 그들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보고 해방의 기분을 느꼈다"면서 "많은 젊은 흑인들이 열광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흑인들은 그동안 영국 언론들이 흑백 혼혈에 이혼 전력이 있으며 할리우드 배우로 활동했던 메건을 묘사한 것에 문제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영국 언론의 왕실 담당 기자 대부분이 압도적으로 백인인 상황에서 영국 매체들이 그동안 전혀 제기하지 않았던 왕실 내 인종차별 의혹이나 백인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지적이 많다고 NYT는 진단했다.

왕실은 메건의 인종차별 주장에 아직 공식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존슨 총리는 8일 브리핑에서 "여왕과 국가와 영연방을 통합하는 여왕의 역할을 최고로 존경해왔다"면서 "왕실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다는 오랜 방침을 이번에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 총리의 집권 보수당에서는 왕실의 편을 드는 목소리도 나왔다.

잭 골드스미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해리 왕자가 "왕실을 공중분해시키고 있다"면서 "메건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낸다"고 비꼬았다.

반면에, 제1야당 노동당에서는 왕실의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는 메건이 제기한 인종차별과 정신건강 문제는 매우 심각히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고, 케이트 그린 의원은 "정말로 충격적"이라면서 즉각 조사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해리와 마클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이 부부가 왕실 전체를 부당하게 인종차별 세력으로 몰아세웠다는 지적도 비등하다.

이들 부부의 아들인 아치의 피부색 문제를 왕실의 누가 거론했는지를 공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왕실이 의혹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부편집장인 카밀라 토미니는 칼럼에서 이런 전략에 대해 "누가 그렇게 했는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기에 사람들이 그들(왕실) 모두와, 마클 기사를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쓴 언론인들을 백인우월주의자로 여기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해리 왕자는 아치의 피부색 문제를 거론한 것은 조부모인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는 아니라고 말했다고 인터뷰를 진행한 오프라 윈프리가 CBS에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