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꿈나무' 봉준호 대학시절에도 장난기·재치 넘쳐"

  • Published : Feb 16, 2020 - 08:47
  • Updated : Feb 16, 2020 - 09:03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대학 친구 동원한 화염병 장면·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호두 까는 장면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인용한 마틴 스코세이지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창의성을 보여준 봉 감독은 작품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이미 개인적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온 것 같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88학번인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은 이들을 '88 꿈나무'라고 불렀다.

그의 영화에는 88학번으로서 봤던 시대의 단상,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성격 그리고 유머 감각 등이 모두 반영됐다.

대학 동문에 따르면 첫 번째 상업 영화 성공작인 '살인의 추억'에 20초가량 등장하는 화염병 시위 장면에는 숨겨진 에피소드가 있다.


(연합뉴스)

영화 속에서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은 봉 감독 대학 친구들이다. 다만 이들이 대학생이라기엔 다소 나이가 든 탓에 복학생으로 설정됐다.

다섯명 정도의 친구가 휴일인 촬영일 아침 일찍부터 나와 화염병을 던졌다. 봉 감독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 사람이 두 개씩 던지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 장면 자체도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봉 감독은 친구들과 농활을 떠나기로 한 날 다른 시위에 참여했다가 '화염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2003년 참여연대 월간 '참여사회'에 이 에피소드를 밝힌 대학 친구 육성철 씨는 "같은 세대의, 비슷한 사건을 겪는 사람들이 겪는 시대 의식·동료의식이 영화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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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능력, 영화 장면을 모두 콘티로 그려내는 그림 실력, '봉테일'이라 불리는 성격은 그때도 여전했다. 당시에도 복잡한 이야기를 같은 공간 안에 욱여넣고, 결국 하나의 굵직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교내신문 '연세춘추'에 한동안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학등록금 인상 문제 등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비판적 시각과 함께 그려냈다. 자신이 직접 참가한 1989년 여름 농활을 추리극 형태로 만든 만화 '농활야사'는 동문 사이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친구들의 경험을 잊지 않았다가 영화에 반영하기도 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윤주가 모임에 나가기 위해 아내 앞에서 호두를 계속 까는 장면은 한 친구의 실화에서 가져왔다. 실제 친구는 호두가 아닌 밤을 깠다는 차이는 있었다.

육씨는 "다들 잊고 있었던 부분이 봉 감독 머리에서는 탁 튀어나오는 것 같다"며 "기억의 저장고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삑사리' 뿐 아니라 수상 소감으로도 드러나는 재치와 장난기는 대학 시절에도 여전했다고 한다.

어느 겨울, 제대를 앞둔 대학 동기가 교련 교육 이수증을 군대로 보내 달라고 봉 감독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이수증과 함께 학장과 총장의 직인까지 실제와 똑같이 그린 문서를 군부대로 발송했다. 누가 봐도 가짜 티가 났지만, 군대에 있던 친구는 자신이 골탕먹었다는 사실에 분해했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과 기우도 연세대학교 마크를 넣어 재학 증명서를 위조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외국어 영화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역사를 쓴 '기생충'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타고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육 씨는 "'기생충'의 반전 부분에서는 옛날의 봉준호가 떠올랐다"며 "자신이 오래 생각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밑바닥에 깔아놓고 복선으로 연결하고 상징이 있으며 씨줄과 날줄이 오묘하게 엉키면서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부분이 그렇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