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Herald

피터빈트

탐라문화광장, 집창촌은 사라졌지만, 노숙·성매매는 여전해

565억원 들였지만 여전히 우범지대 "사람들 발길 돌려 대책 절실"

By Im Eun-byel

Published : Oct. 1, 2017 -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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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저녁 화려한 산지천 레이저 분수쇼가 펼쳐지는 제주시 원도심 탐라문화광장.

러닝셔츠 차림의 한 남성이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주변을 배회했다.

남자의 몸에서 나는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히죽히죽 웃다가 뜬금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돌발행동에 놀란 여성들과 가족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곧이어 인근 벤치에서 벌어진 또 다른 술판.

울고, 웃고, 때론 말다툼하며 싸우다 지친 노숙자와 주취자들은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광장에는 소주병과 막걸리병,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만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27일 밤 제주시 탐라문화광장에서 길 바닥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술판을 벌여 놓고 주변 상가와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7일 밤 제주시 탐라문화광장에서 길 바닥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술판을 벌여 놓고 주변 상가와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깊은 밤이 되면 중년 여성들이 지나가던 뭇 남성들의 팔을 잡아끌며 성매매 호객행위를 벌이곤 했다.

집창촌을 이루던 과거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음성적으로 성매매가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일 밤낮 없이 반복된 불쾌한 풍경.

제주도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2011년부터 565억원을 들여 올 초 탐라문화광장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에게 이곳은 여전히 '우범지대'다.

인근 칠성로 일대 쇼핑을 왔거나 제주의 명물 동문재래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광장과 이어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실제로 제주올레 17코스 종점과 18코스의 시작점을 알리고 완주 스탬프를 보관하는 '스탬프 간세'가 탐라문화광장 내에 있었지만 노숙인과 주취자 문제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까지 했다.

제주도의회 홍경희 의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 6월까지 탐라문화광장과 주변에서 일어난 사망사고만 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지역주민들이 나섰다.

제주시 원도심 주민과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탐라문화광장협의회를 만들어 공공연한 음주행위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주민들은 "오랜 공사 기간 온갖 생활 불편을 참으며 탐라문화광장의 완성을 기다렸지만, 생활환경이 나아지기는커녕 공공연한 음주행위와 흡연, 성매매 알선, 주차문제 등 적잖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행정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제주도로부터 탐라문화광장의 모든 시설물에 대한 관리를 이관받은 제주시는 지역주민과 공무원·자치경찰 등으로 구성된 '탐라문화광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2차 회의까지 진행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만 공감할 뿐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주취자 문제와 관련해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확인해 보니 51개 기초자치단체 등에서 조례를 만들어 음주행위를 금지하는 곳이 있었지만, 문제는 벌칙조항이 없다"며 "흡연이나 성매매의 경우 법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주취문제는 마땅히 처벌할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구나 최근에야 제주도로부터 관리 사무를 이관받은 상태라 현재로썬 올해 집행할 수 있는 관련 예산이 없는 실정"이라며 "예산이 책정되는 대로 노숙자, 주취자, 성매매 문제를 비롯한 탐라문화광장 활성화 방안에 대한 용역을 내년에 전문기관에 맡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경희 제주도의원은 "노숙인, 주취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관광·문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홍보에 힘쓴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며 "탐라문화광장 내에 있는 치안센터를 24시간 운영해 적극적으로 계도하고, 자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복귀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주취자 문제 해결을 비롯한 탐라문화광장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의견과 지역주민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 있는 '탐라문화광장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어려움이 있지만 다양한 방법 모색을 통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는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은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용진교에 이르는 길이 440m의 산지천을 생태하천으로 재정비하고 그 주변 4만5천845㎡를 만남·쇼핑·먹거리·볼거리가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난 2011년부터 총 565억원이 투입, 지난 3월 주차장·광장·도로·공원 등 기반시설공사가 완료됐다. (연합뉴스)